빌1장 3-11절 "그리스도의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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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사이'의 기록이다. 그 ‘사이’에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공존한다. 그 사이에 무엇을 채우는가, 그만큼이 인생이다. 우리의 이십대와 삼십대를 무엇으로 채우느냐에 따라 그만큼이 우리의 인생이 되는 것이다.
도종환 시인은 그의 시,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산벚나무 잎 한쪽이 고추잠자리보다 더 빨갛게 물들고 있다. 지금 우주의 계절은 가을을 지나가고 있고, 내 인생의 시간은 오후 세 시에서 다섯 시 사이에 와 있다. 내 생의 열두 시에서 한 시 사이는 치열하였으나 그 뒤편은 벌레 먹은 자국이 많았다.
이미 나는 중심의 시간에서 멀어져 있지만 어두워지기 전까지 아직 몇 시 간이 남아 있다는 것이 고맙고 해가 다 저물기 전 구름을 물들이는 찬란한 노을과 황홀을 한번은 허락하시리라는 생각만으로도 기쁘다.
아직도 내게는 몇 시간이 남아 있다.”
지금은 세 시에서 다섯 시 사이 - 도종환 -
우리에게 열 두시에서 한 시 사이가 있었습니다. 치열하게 살아왔지요. 패기와 열정으로 향기로운 꽃을 피우고 과실수를 맺기도 하였지먼, 벌레먹은 자국도 있었음을 시인은 표현합니다.
30-40대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그 사이를 지나서...
어쩌면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인생의 종말의 시간을 향하여 달리고 있는 듯 합니다. 그 사이를 무엇으론가 채우면서 살아간다.
지금 시인에게는 중심에서 조금 벗어난 시간인 아직 세 시와 다섯 시를 보내고 있지만 그 남아 있는 시간을 고마워하면서 아직도 한 번은 노을과 황홀함을 허락하 실 것이라는 사실에 감사하며 서 있다.
여러분은 몇 시에서 몇 시 사이에 서 계십니까?^^
좌우 앞뒤로 한번 인사해 볼까요? “지금 몇시요???”/ 조시던 분은...뭔 말이지? 하실수 있습니다.ㅎ
오늘 우리에게 주신 이 시간에 감사가 더해지는 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이 시간에 대하여 먼저 나누는 것은 우리가 본 빌립보서 말씀이, 이 시간 사이에 서있음을 들려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 1:5–6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우리는 이처럼 첫날부터 그리스도의 날까지 그 사이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인으로 고백한 ‘그 날부터' 지금까지 인도하고 계십니다. 이 ‘첫날'은 마치 하나님께서 에덴을 창조하신 후 보시기에 좋았다고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름다운 모습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첫 날'은 생명의 시작이었으며, 모든 피조물을 복음의 말씀으로 새롭게 하시는 새 창조의 시작입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의 날로 지칭되고 있는 ‘마지막 날’은 이제 생명이 완성되는 날입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재림의 날입니다. 장막은 걷히게 될 것이며 아름다운 시작이 완성되게 되는 날입니다.
교회는 이 ‘두 날’ 사이에서 살아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을 통해 ‘첫 날'을 경험한 그리스도인들은 ‘마지막 날'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러하기에 우리 모두는 그 날의 주인공이신 재림 주님 앞에 정결한 처녀와 같이 드리기를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처럼 본문의 빌립보 교회 성도들도 이 사이를 살아가며 우리에게 복음을 위하여 걸어가는 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쁨으로 복음을 받아들였고,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겼던 사람들입니다.
빌립보서 1:3–4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이들을 보는 사도바울도 기쁨으로 기도하며 동역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교회와 공동체를 만나는 것은 참 행복한 일입니다. 어제 저녁에 9시가 넘어까지 청년10명과 함께 찬양하고 말씀을 듣고, 교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피곤하기도 하였지만, 그럼에도 너무 기뻤습니다.
청년들 얼굴이 밝아진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기쁨으로 복음을 받아들이는 빌립보교회가 남의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우리 광명교회가 이러한 기쁨이 넘쳐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서로를 생각할 때마다 감사가 넘쳐나기를 소망합니다. 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기쁨과 소망이 넘쳐나는 공동체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그 사이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라
빌립보서 1:5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이 서신에 기쁨과 감사의 마음이 가득 표현되는 이유는 성도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복음을 위한 일이 무엇인가요? 우리가 지난주 새생명축제로 드렸던 것처럼, 복음을 전하는 일로 시작하여, 선교의 최일선에 서있는 바울을 후원하는 일까지를 포함하는 일을 말합니다.
새생명잔치가 지난주에 진행되었습니다. 복음을 위한 일에 대한 우리의 자세는 주님 오시는 날까지 이어져야 하는 줄 믿습니다. 27명의 영혼이 등록하였는데요. 어떤 분은 성경책을 구입하셨습니다. 오랫동안 쉬셨던 분을 심방할 수 있었던 주간이었습니다. 우리가 품었던 태신자들, 찾아오신 27명의 분들, 주를 향한 나아가는 이 분들을 위하여 지속적으로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일이 우리가 걸어야 할 길입니다.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는 방법이지요.
디모데후서 4:2 a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마가복음 16:15 b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걸음 곳곳에 복음을 전파하라"는 말씀을 붙들고 우리는 이 복음을 위한 일에 힘써야 하는 줄 믿습니다.
2. 선한 일에 힘쓰라
빌립보 교회는 말로 복음을 전할 뿐 아니라, 물질과 기도로 선교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것만 아니라 도덕적 삶에 있어서도 높은 기준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1: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모인 교회라 할지라도 그 안에 그리스도인다운 모습이 나오지 않고 교회다운 모습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복음의 길을 막는 것이 됩니다.
종교개혁자였던 칼빈은 제네바 도시의 사람과 시의원에게 이렇게 설교하였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진심으로 나를 다시 부르는 것이라면 여러분 가운데 만연해 있는 범죄와 성적 방탕함을 청산하십시오. 내 생각에 ‘복음의 가장 큰 적’은 교 황도, 이단도, 유혹하는 자들도, 독재자도 아닙니다. 복음에 대해 가장 큰 적은 바로 ‘나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착한 행실이 없는 죽은 믿음이 무슨 쓸 데가 있겠습니까? …….”
이 메시지는 500년이 지난 지금도 울림을 줍니다.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이 깊게 새겨야 할 내용임에 틀림없습니다. 심판대 앞에 서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순간 우리는 죽은 믿음과 같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잘 다니고 복음은 전하면서도 자신은 정작 말씀대로 살지 않는다면 우리도 이와 같은 실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절대로,,,절대로,,,이러한 길에 서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은 신앙생활의 윤리 도덕적 차원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처음 만나 구원의 감격을 맛본 이후로부터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기 위하여 착한 행실과 삶을 살아냈던 사람들이었다. 그 첫날부터 지금까지 잘 달려온 그들에게 말씀은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그것을 잘 유지할 것을 권면한다.
사랑하는 광명의 권속 여러분, 우리의 삶을 점검합시다. 복음에 대한 앎에서 그치는 신앙이 아닌 삶으로 빚어지는 복된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언제까지요?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할렐루야!!! 벌써 힘들죠~^^그래서 우리는 함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를 통하여 미평동, 둔덕동, 여수일대가 살아있는 믿음의 열매가 가득하기를 축복합니다.
3. 중심을 잡고 살아내라.
빌립보서 1:9–11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빌립보 교회가 착한 일을 잘 해 왔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에게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선한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진실함으로 살아야 합니다. 허물이 없어야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지금까지 잘 지켜왔지만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러야 한다고 말씀한 다. 이 말은 끝 날까지 그리스도인으로써 중심을 잡고 살아가라고 명하는 것입니다.
최근 극장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영화 “서울의 봄"을 잠시 다루어 보고자 합니다. 단연 압권은 전두광의 역할이지만...저는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의 모습을 나누고자 합니다.
1979년 12월 12일 수도 서울에서 일어난 신군부 세력의 반란을 막기 위해 일촉즉발의 9시간을 그린 영화입니다. 12월 12일 군사반란이 일어나던 그 밤...탱크와 수 많은 군사가 다가오는 그 앞에 서서, 수도경비를 담당하던 이태신은 이렇게 말 합니다.
“내 눈 앞에서,  내 조국이... 반란군한테 무너지고 있는데!!!
끝까지 항전하는 군인 하나 없다는게...
그게 군대냐… 이게...나라냐...중심을 잡은 군인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태신의 역할은 군대가 불의와 죄악으로 뒤덮여 갈 때 중심을 바로잡고 균형을 잃지 않는 사람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처럼 세상이 죄악으로 가득하지만 중심을 잘 잡고 있어야 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중심을 잘 지켜야 하는 공동체가 바로 교회이어야 합니다.
빌립보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삶을 아주 잘 살았던 사람으로 오늘 본문 10절은 기록합니다.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진실하여, 허물이 없는 사람"입니다.
우리 광명교회가 이처럼 중심을 바로 잡고 균형을 지켜가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는 사이를 살고 있으며, 끝 날까지 잘 달려야 하는 존재들이라고. 그리고 우리는 그날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이라고……. 빌립보의 그리스도인 들은 주님을 미소 짓게 할 만큼 잘 살아온 존재였다. 그들을 통해 그 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있었으며, 하늘 공동체가 어떠한지를 구체적으로 보고 있었다.
아무리 잘 달렸다 하더라고 마지막을 놓치면 실패하는 것이기에 첫 날과 마지막 날 사이를 우리가 나아가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성탄절을 보름 앞둔 우리는 어느 사이를 지나가면서 거기에 무엇으로 채우고 있는가? 예수님께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초림이 분명한 복음이라면 우리는 그 사이를 어떻게 채워가고 있으신가요? 다시 오실 주님을 기대하며 복음을 들고 선할 일에 힘쓰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특별히 이 시간 함께 구할 것은 하나님 우리에게 중심이 흔들리지 않도록 믿음을 더하여 주옵소서. 빌립보교회를 통하여 복음을 전하는 일과 선한 일로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어져 가는 것처럼...
우리 광명교회를 통하여 잃어버린 영혼이 주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임하게 하옵소서. 나의 삶을 돌아봅니다. 복음에 합당한 자로써 세상 가운데 선을 행하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옵소서.
성탄을 기다리는 12월 다시 오실 주님을 기대하며 그 사이를 기쁨과 감사로 걷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찬양합시다.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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